마르그리트 브로크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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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마르그리트 브로크디는 1893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테니스 선수로, 9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1912년 스톡홀름 올림픽 여자 단식에서 금메달을 획득하고 혼합 복식에서 동메달을 땄다. 1913년과 1914년 프랑스 선수권 여자 단식에서 우승했으며, 특히 1914년 결승에서 수잔 랑글렌을 꺾어 "여신"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1925년부터 1927년까지 윔블던 단식 준결승과 프랑스 오픈 준준결승에 진출했고, 1927년에는 장 보로트라와 함께 혼합 복식에서 우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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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그리트 브로크디 | |
---|---|
기본 정보 | |
![]() | |
본명 | 마르그리트 마리 브로크디스-빌루-보르드 |
국적 | 프랑스 |
출생일 | 1893년 4월 17일 |
출생지 | 피레네자틀랑티크 포 |
사망일 | 1983년 4월 23일 |
사망지 | 오를레앙 |
신장 | 알려지지 않음 |
플레이 스타일 | 알려지지 않음 |
선수 경력 | |
프로 전향 | 알려지지 않음 |
은퇴 | 알려지지 않음 |
총 상금 | 알려지지 않음 |
테니스 명예의 전당 헌액 연도 | 알려지지 않음 |
웹사이트 | 알려지지 않음 |
싱글 | |
통산 전적 | 승 97, 패 37 |
통산 우승 횟수 | 24회 |
최고 랭킹 | 9위 (1925년, A. 월리스 마이어스) |
호주 오픈 결과 | 참가 기록 없음 |
프랑스 오픈 결과 | 8강 (1925년, 1927년) |
윔블던 선수권 대회 결과 | 4강 (1925년) |
US 오픈 결과 | 참가 기록 없음 |
기타 토너먼트 | 우승 (1912년 하드 코트 세계 선수권) |
복식 | |
통산 전적 | 알려지지 않음 |
통산 우승 횟수 | 알려지지 않음 |
최고 랭킹 | 알려지지 않음 |
프랑스 오픈 결과 | 4강 (1925년) |
윔블던 선수권 대회 결과 | 8강 (1927년) |
혼합 복식 | |
통산 전적 | 알려지지 않음 |
통산 우승 횟수 | 알려지지 않음 |
프랑스 오픈 결과 | 우승 (1927년) |
윔블던 선수권 대회 결과 | 준우승 (1914년) |
올림픽 혼합 복식 결과 | 알려지지 않음 |
올림픽 메달 | |
올림픽 |
2. 생애 및 선수 경력
마르그리트 브로크디는 피레네자틀랑티크주 포에서 태어났다.[2] 1912년 스톡홀름 올림픽에 나가 단식 결승전에서 독일의 도라 쾨링을 4-6, 6-3, 6-4로 꺾고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혼성 복식에서 그녀는 알베르 카네와 짝을 이루며 동메달을 땄다. 1913년과 1914년 그녀는 프랑스 선수권을 우승하였으며, 후기의 결승전에서 그녀는 15세의 수잔느 랑글랑을 꺾었다. 그녀는 단식 결승전에서 랑글랑을 꺾은 단 하나로서 "여신"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1924년 파리 올림픽에도 나갔으나 아무 메달도 획득하지 못하였다.[2]
1925년부터 1927년까지 브로크디는 자신의 테니스 경력에서 또다른 성공적인 전성기를 가져 윔블던에서 단식 준결승전(1925년)과 이제 완전히 국제적인 프랑스 오픈에서 2번이나 준준결승전(1925년과 1927년)에 도달하였다. 게다가 그녀는 1927년 파리에서 장 보로트라와 짝을 지어 혼성 복식을 우승하였다.
90세의 나이로 오를레앙에서 사망하였다.[2]
2. 1. 초기 생애 및 테니스 입문
마르그리트 브로크디는 1893년 4월 17일 피레네자틀랑티크주, 포에서 태어났다.[2] 세기 초에 가족과 함께 파리로 이주하여 기계 갤러리의 일부인 두 개의 먼지 묻은 코트에서 테니스를 치기 시작했다. 이후 프랑스 레이싱 클럽에 가입했다.[4]1910년부터 프랑스 선수권 대회에서 활약하기 시작했지만, 처음에는 여자 단식에서 1910년과 1911년 2년 연속 준우승을 차지했으며, 잔 마테이(Jeanne Matthey)에게 연달아 패했다. 1911년 프랑스 선수권 혼합 복식 부문에서 브로크디스는 앙드레 고베르(1890년 - 1951년)와 조를 이루어 첫 우승을 차지했다.[2] 1912년 스톡홀름 올림픽 테니스 야외 단식 결승에서 독일의 도라 쾨링을 4-6, 6-3, 6-4로 꺾고 금메달을 획득하였다.[3] 알베르 카네와 함께 출전한 혼성 복식에서는 동메달을 땄다.
1913년과 1914년에 그녀는 프랑스 선수권을 우승하였으며, 1914년 결승전에서 15세의 수잔 랑글렌을 꺾었다. "여신"이라는 별명을 가진 브로크디는 랑글렌을 풀로 치러진 단식 결승에서 이긴 유일한 선수로도 알려져 있다.[4] 1913년 브로크디스가 잔 마테이를 꺾은 경기의 스코어는 남아 있지 않으며, 1914년 수잔 랑글렌을 꺾은 스코어 (5-7, 6-4, 6-3)부터 기록이 남아 있다. 윔블던 선수권 대회 혼합 복식 부문에서는 앤서니 와일딩과 조를 이루어 결승에 진출했으나, 제임스 파크 & 에설 톰슨 래컴 조에게 6-4, 4-6, 2-6으로 패하여 준우승을 차지했다.
1915년부터 1919년까지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프랑스 선수권 대회가 중단되었다. 그 동안 1917년 브로크디스는 첫 번째 결혼을 하였고, 남편의 성 "빌로" (Billout)를 병용하여 "마르그리트 빌로"라고 불리기도 했다. 1920년부터 재개된 프랑스 선수권 대회에서는 브로크디스와 수잔 랑글렌이 여자 단식 결승에서 맞붙었지만, 랑글렌에게 1-6, 5-7로 패했다. 그녀는 1924년 파리 올림픽에 참가했지만 메달을 획득하지 못하였다.[2]
2. 2. 올림픽 금메달과 프랑스 선수권 제패
마르그리트 브로크디는 피레네자틀랑티크주 포에서 태어났다.[2] 1912년 스톡홀름 올림픽 테니스 단식 결승전에서 독일의 도라 쾨링을 4-6, 6-3, 6-4로 꺾고 금메달을 획득하였다.[2] 알베르 카네와 함께 출전한 혼성 복식에서는 동메달을 땄다.[3] 1913년과 1914년에는 프랑스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하였으며, 특히 1914년 결승전에서는 15세의 수잔 랑글렌을 꺾었다.[3] "여신"이라는 별명을 얻은 브로크디는 랑글렌을 풀 코트 단식 결승에서 이긴 유일한 선수로 알려져 있다.[4]1910년부터 프랑스 선수권 대회에 참가한 브로크디는 1910년과 1911년 여자 단식에서 2년 연속 준우승을 차지했고, 1911년에는 앙드레 고베르와 조를 이루어 혼합 복식에서 첫 우승을 차지했다. 1913년과 1914년에는 프랑스 선수권 여자 단식에서 2연패를 달성했다. 윔블던 선수권 대회 혼합 복식에서는 앤서니 와일딩과 짝을 이루어 결승에 진출했으나 준우승에 머물렀다. 1920년 프랑스 선수권에서는 수잔 랑글렌에게 패하며 3번째 우승을 놓쳤다. 1924년에는 여자 복식과 혼합 복식에서 우승했다. 1927년에는 장 보로트라와 함께 혼합 복식에서 다시 한번 우승을 차지했다.
1925년부터 1927년까지 브로크디는 윔블던 선수권 대회 단식 준결승(1925년)과 프랑스 오픈 준준결승(1925년, 1927년)에 진출하며 성공적인 시기를 보냈다.[5] 1927년에는 장 보로트라와 짝을 지어 혼성 복식을 우승하였다. 브로크디는 90세의 나이로 오를레앙에서 사망하였다.[2]
2. 3. 제1차 세계 대전과 그 이후
마르그리트 브로크디는 1912년 스톡홀름 올림픽 테니스 단식 결승전에서 독일의 도라 쾨링을 꺾고 금메달을 획득했다. 혼성 복식에서는 알베르 카네와 함께 동메달을 땄다. 1913년과 1914년에는 프랑스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하였는데, 특히 1914년 결승전에서는 15세의 수잔느 랑글랑을 꺾었다. 이 승리로 브로크디는 "여신"이라는 별명을 얻었다.1915년부터 1919년까지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프랑스 선수권 대회가 중단되었다. 전쟁 기간 동안 브로크디는 첫 번째 결혼을 하여 "마르그리트 빌로"로 불리기도 했다. 1920년 프랑스 선수권 대회가 재개되었고, 브로크디스는 결승에서 수잔느 랑글랑에게 패하며 준우승을 기록했다.
1924년 파리 올림픽에 참가했지만 메달을 획득하지는 못했다.
2. 4. 국제 대회 전환과 후기 선수 경력
마르그리트 브로크디는 1925년부터 1927년까지 자신의 테니스 경력에서 또다른 성공적인 전성기를 가졌다. 윔블던에서 단식 준결승전(1925년)과 국제적인 프랑스 오픈에서 2번이나 준준결승전(1925년과 1927년)에 도달하였다. 1927년 파리에서 장 보로트라와 짝을 지어 혼성 복식을 우승하였다.1910년부터 프랑스 선수권 대회에서 활약하기 시작했지만, 여자 단식에서는 1910년과 1911년 2년 연속 준우승을 차지했다. 1911년 프랑스 선수권 혼합 복식 부문에서 브로크디스는 앙드레 고베르와 조를 이루어 첫 우승을 차지했다.
1915년부터 1919년까지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프랑스 선수권 대회가 중단되었다. 1920년부터 재개된 프랑스 선수권 대회에서는 브로크디스와 수잔 랑글렌이 여자 단식 결승에서 맞붙었지만, 랑글렌에게 패해 3번째 우승을 놓쳤다. 1924년 브로크디스는 여자 복식과 혼합 복식 두 부문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13년 만의 혼합 복식 우승은 장 보로트라와 함께 이루어냈다.
1925년부터 국제 대회가 된 프랑스 선수권 대회에서, 브로크디스는 1927년에 다시 혼합 복식에서 보로트라와 조를 이루어 우승했다. 프랑스 선수권의 전환기를 겪은 마르그리트 브로크디스는 37세가 되는 1930년까지 현역으로 활동했다.
2. 5. 은퇴 이후
마르그리트 브로크디는 90세의 나이로 오를레앙에서 사망하였다. 1925년부터 1927년까지 브로크디는 테니스 경력에서 또다른 성공적인 전성기를 가졌다. 윔블던에서 단식 준결승전(1925년)과 국제적인 프랑스 오픈에서 2번이나 준준결승전(1925년과 1927년)에 도달하였다. 1927년 파리에서 장 보로트라와 짝을 지어 혼성 복식을 우승하였다.3. 주요 대회 성적
빌 틸든